・동네상권은 고령화 사회에 집중적으로 철저히 대비하라

・뿌린대로 거두리라 - 지역환원을 통한 예비고객 확보하기 

장기 불황이 지속되면서 일본의 백화점들은 줄줄이 문을 닫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극도로 침체된 분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승승장구하는 백화점이 있다. 바로 도쿄 오타(大田) 구에 위치한 다이신 백화점이다. 백화점이란 명칭 때문에 대단히 큰 유통업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 백화점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규모가 작은 ‘큰 슈퍼마켓’ 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도쿄는 인구밀도가 워낙 높다 보니 어느 지역에서나 대형마트와 백화점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다이신이 위치해 있는 오타 구 지역도 예외는 아니다. 그리 넓지 않은 이곳에서만 모두 8개의 대형마트와 백화점들이 거대 상권을 형성하고 있다. 다이신은 거대기업을 비롯한 8개의 쟁쟁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6년 연속 지역 매출 1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비결이 뭘까? 

소 상권 킬러 마케팅 전략의 귀재, 다이신

다이신 백화점은 도쿄 남쪽 외곽지인 오타(大田)구 오모리(大森) 역 부근에 위치해 있다. 이 지역은 부자에서 서민까지 약 18만 명이 운집해 있는, 도쿄의 대표적인 생활 경제권이다. 오모리 역 주변은 국내외 최대 유통재벌들이 모두 뛰어들어 그야말로 불꽃 튀기는 전쟁을 벌이고 있는 유통의 최대 격전지다. 일본 철도 재벌 도큐(東急) 그룹의 도큐스토어, 세계 최대 유통기업 월마트의 세이유(西友), '일본의 이마트' 이토요카도, 대형 슈퍼 체인 오제키와 세이조이시이(成城石井) 등이 그런 기업들이다. 게다가 역에서 남쪽 방향으로 1.5킬로미터 떨어진 곳에는 철도 재벌인 도부(東武) 그룹의 도부스토어, 종합상사 스미토모(住友) 상사와 미국 2위 슈퍼 체인 세이프웨이가 합작한 서미트스토어가 상권을 장악하고 있다. 한데,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환경 속에서도 다이신 백화점은 전혀 굴하지 않고 가장 경쟁력 있는 점포의 지위를 6년 동안이나 내주지 않고 있는 것이다.

다이신의 성공 사례는 최근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는 우리나라 동네상권 유통업계에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통계자료에 따르면, 연간 약 400만 명의 고객이 다이신 백화점을 이용한다고 한다. 상권 반경 5백미터 이내 거주 지역민이 2만2천명 정도인데, 이 중 70%를 넘는 1만5천여명의 주민이 다이신의 멤버십 회원으로 등록되어 있다. 즉, 다이신은 반경 500미터 상권에 올인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이른바 ‘지역 1번지 전략’이다.

이 지역 밀착형 전략 또한 인구 고령화 추세와 깊은 연관이 있다. 좀더 자세히 살펴보자. 65~75세 노년층의 경우, 하루 도보 이동 가능거리가 얼마나 될까? 평균 1킬로미터다. 이것은 2005년 일본 국토교통성이 실시한 '전국 도시 교통 특성 조사' 결과다. 이 자료를 근거로 볼 때 노년층의 경우 생필품을 사기 위해 걸을 수 있는 거리가 편도 기준 500미터 정도라고 보면 무리가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 골목상권의 문제를 일찌감치 겪은 도쿄의 사례를 유심히 살펴보아야 할 대목이다. 다이신 백화점이 오타구 전체 또는 도쿄 남부 지역 일대를 커버하려는 생각을 포기하고 반경 5백미터에 집중한 이유는 바로 이런 인구적 특성 때문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일본 유통기업의 시장 전략은 ‘대형화’와 ‘대량화’ 두 가지였다. 즉, 어느 지역을 시장조사한 뒤 승산이 있다고 판단되면 일단 초대형 마트를 세우고, 그물로 고기를 잡듯 손님을 끌어 모으는 '대 상권 전략'에 주력했던 것이다. 하지만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23.1퍼센트에 이르는 초 고령사회에 진입하면서 시장의 성공 키워드가 바뀌었다. 즉, 이동 거리가 짧을 수밖에 없는 노년층을 집중 공략하는 '소 상권 전략'으로 변화한 것이다.

2006년 무렵부터 일본은 초(超) 고령사회에 진입했다. 그런 영향 탓에 한때 골목 중소상인들을 존폐의 위기로 몰아넣었던 거대 유통자본 중심의 ‘대(大) 상권 시대’가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다. 대신, 활발한 지역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한 ‘소(小) 상권 시대’로 탈바꿈해간다. 또한 그런 추세에 맞춰 다이신 백화점은 매우 정교한 ‘소 상권 킬러(killer) 마케팅’ 전략을 구사한다. 우리나라의 유통업계나 자영업자들이 다이신 백화점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소 상권 킬러 마케팅 전략은 우리나라에서도 커다란 문제로 지적되어온 대형 유통업체의 무분별한 골목상권 진입을 막을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으리라 본다. 대자본 전성시대가 지역 커뮤니티와 긴밀히 연결되는 토박이 중소자본의 시대로 진화할 수 있음을 일본 다이신 백화점 사례는 잘 보여준다. 지역 백화점 다이신의 성공은 대자본에 밀려 존폐 위기에 처한 중소 상인들에게 새로운 희망과 재기의 가능성을 심어주고 있는 것이다. 

다이신의 4가지 성공 노하우

다이신 백화점이 가진 가장 큰 강점은 ‘고객과의 스킨십’이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여름이면 다이신은 지역 주민들을 위해 백화점 옥상에 족욕 및 간이 수영장을 설치한다. 그런 다음 동네 어르신들과 아이들에게 무료로 수준 높은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런 감동 서비스의 혜택을 한 번이라도 받아본 사람이라면 이후 옷을 사거나 책가방을 구입해야 할 때 자연스럽게 발길이 다이신으로 향하게 될 수밖에 없다. 지하철 역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5층 높이의 다이신백화점 입구에는 노인들이 좋아하는 왕년의 유명가수 초청 디너쇼가 열린다는 포스터가 커다랗게 붙어 있고 그 옆에는 지역민이 함께 참가하는 사과 관련세미나 안내문도 있다. 1층 식품매장의 진열대는 아주 낮아 키가 작은 노인들도 높은 곳에 있는 제품을 쉽게 잡을 수 있게 설계해 놓았다. 식품코너는 소포장이 많고, 매장 곳곳에 의자를 놓아 쇼핑하다 힘들면 앉아 쉴 수 있도록 고객을 배려한 동선을 설계했다. 이곳에 가면 여름에는 모든 직원이 하와이안 셔츠로 유니폼을 착용하고 있다. 이는 고객 눈에 잘 보이도록 사장이 직접 선택했다고 한다.다이신은 이런 식의 ‘감동경영’과 ‘지역 초밀착 경영’으로 지역 주민들의 마음을 날카롭게 파고들고 있다.

‘다양한 상품 개발’은 이 백화점이 가진 또 하나의 강점이자 성공 전략이다. 다이신 백화점에서 판매하는 제품의 종수는 다른 백화점들에 비해 월등히 많은 편이다. 무려 18만 종이나 된다. 예를 들어 이 백화점은 쥐약과 쥐덫, 불당(佛堂) 용품, 애완동물 사료, 개 전용 생수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제품을 판다. 칫솔 종류만 해도 300여 가지나 된다. 애완동물 사료의 경우는 무려 1만 가지를 넘어설 정도다. 일반 매장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이색 상품도 많다. 놀랍게도 포마드(머릿기름)와 새똥으로 만든 세안제, 돼지털로 만든 칫솔, 분말 치약 등은 다이신의 인기 상품이자 스테디셀러다. “단 한 명의 고객이라도 어떤 상품을 원한다면 마땅히 그 상품을 갖추어놓아야 한다.”라는 것이 다이신의 경영철학이자 신조다. 그런 터라 100엔짜리 값이 아주 저렴한 상품에서부터 280만 엔짜리 명품 카펫에 이르기까지 굉장히 다양한 가격대의 제품이 판매되고 있다.

다이신 백화점을 지휘하는 야전사령관 격인 니시야마 히로시(65세) 사장의 이력도 독특하다. 건축설계사 출신인 니시야마는 다이신 창업주와의 인연으로 건축 일을 도와주다가 100억 엔의 부채에 경영 악화로 부도 위기에 놓인 백화점의 인수를 권유받게 된다. 많은 고민 끝에 그는 다이신을 인수하기로 결정했고, 은행에서 20억 엔을 대출하여 창업주가 갖고 있던 주식을 전량 매수했다. 이후 다이신은 최대 반경 1.5킬로미터에 집중하는 지역 초 밀착 경영 전략을 세우고 흔들림 없이 유지해나가며 성공 신화를 썼다.

다이신 백화점의 경영 노하우를 4가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소량 팩 상품, 익숙하게 사용하던 상품을 구비하라

노년층에게 가장 인기가 높은 코너는 어디일까? 바로 ‘소량 팩’ 코너다. 생선회 3점, 김밥 1개 등 노인 고객에 맞춘 소량 팩 코너는 단연 최고의 인기를 얻고 있다. 다이신 백화점은 다른 유통업체의 대용량 저가 판매 방식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판매 전략으로 노인들의 사랑을 독차지한다. 한 명이라도 원하는 고객이 있다면 상품을 매입하고 있으며, 그것이 1년에 몇 개 팔리지 않는다 해도 상관없다. 이 방침은 다이신백화점의 고객들이 중장년층이 많기 때문인데, 이들은 신제품보다 오랫동안 손에 익은 상품들을 고집한다. 이제 지역민뿐 아니라 먼 곳에서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고령자 고객들도 많다.  

2. 고객과 대화하라

대부분의 백화점은 직원들이 개점 전 일찍 출근해서 서둘러 상품 진열을 한다. 하지만 이곳 다이신에서는 영업시간 중에 상품 진열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고객과 자연스럽게 대화할 수 있는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한 치밀한 계산과 전략에서 나온 것이다. 직원들은 두서없는 대화를 통해 고객의 세밀한 취향과 선호도까지 파악할 수 있다. 이밖에도 그런 일상적인 대화가 다이신에 대한 고객 만족도를 높여주는 긍정적인 효과까지 보너스로 안겨주고 있다. 실제로, 고객들에게 다이신 백화점을 좋아하는 이유를 물어보면 직원들과 편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점을 꼽는 경우가 가장 많다. 그리고 이런 응답율은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눈에 띄게 높은 비율로 나타났다. 초고령화시대로 진입한 일본 사회의 특성에 맞게 이른바 ‘말동무 서비스’로 톡톡히 재미를 보고 있는 셈이다.  

3. 쇼핑 약자를 보호하라

다이신 백화점은‘행복 배달’ 서비스를 제공한다. 자동차 운전을 할 수 없는 노인이나 임산부, 장애인으로서 백화점으로부터 반경 1.5킬로미터 이내에 사는 고객에게 무료로 구매제품을 배달해주는 서비스다. 조건에 해당되는 사람은 전화로 신청할 수도 있다. 가격 제한은 없다. 예컨대, 두 봉지에 316엔 하는 설탕도 주문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65세 이상 노인들을 위한 '도시락 배달서비스'까지 진행되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다이신 백화점은 간혹 가다 쓰러져 있는 노인을 만나면 잘 갖춰진 비상연락망을 통해 빈틈없이 조치를 취하고, 필요한 경우 민간 경찰의 기능까지 수행한다. 단순한 지역 초밀착경영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어 일개 백화점이 공공기관의 기능을 훌륭하게 보완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점들은 당연하게도 다이신에 대한 거의 무조건적인 신뢰와 높은 충성도로 이어진다. 주 고객들에게 다이신은 단순한 백화점 이상의 존재로 자리매김해 있다. 

4. 지역에 환원하라

다이신 백화점은 사회 환원 차원에서 매년 축제(마쯔리)를 연다. 축제는 백화점 주차장에서 주로 개최되는데, 아이들을 위한 재미있는 놀이시설을 배치하는 등 지역주민과 화합하는 장으로 적극 활용된다. 다양한 이벤트 중 아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이벤트는 ‘조랑말 타기’다. 도심 한복판에 조랑말이 등장하여 이 백화점의 예비고객인 아이들을 위한 흥미진진한 서비스를 선보인다. 지난 여름 축제 때는 점포 옆 주차장에 직원들과 주변 상점가, 거래처 등의 힘을 빌려 음료와 타코야키 등을 판매하는 노점을 전개했다. 특히 금붕어 건지기나 송어 잡기 등 어린이 대상 이벤트가 인기였다. 백화점 옥상에도 어린이용 풀장과 모래밭을 조성해 어린이들에게 놀이터를 제공했다.

불행하게도 우리나라는 이런 지역 초밀착 경영을 하는 백화점을 찾기가 힘이 든다. 1998년 IMF 시기를 지나면서 우리나라 주요 지방 토호세력이 세운 백화점들이 대부분 유통재벌들이 세운 대형백화점에 편입된 지 오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백화점을 좀처럼 찾기가 쉽지는 않다. 그렇지만 호시탐탐 골목상권을 노리는 대형유통업체의 공격으로부터 골목상권을 수호하는 전략은 바로 다이신 백화점 사례에 고스란히 녹아져 있으므로 유념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몇 년도부터 고령화사회로 진입할 것인가. 통계청에 의하면 우리는 이미 2000년에 고령화사회로 진입을 한 지 오래다. 우리나라의 '시니어 비즈니스'는 소득·소비 수준이 상대적으로 높은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 출생)가 대거 은퇴할 때부터 본격 성장할 것이며 이때부터 초고령화 사회 초입으로 진입할 것이라 예측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그러므로 먼저 초고령화사회로 진입한 일본의 사례를 철저하게 분석하는 것이 향후 돈 벌 수 있는 지름길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