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이나 터치 한 번으로 물건 사는

‘제로 에포트 커머스’(Zero effort commerce) 시대 옵니다”

김영호 ‘김앤커머스’ 대표는 대학 졸업 후 삼성그룹에 입사해 신세계백화점부터 시작한 유통과의 인연이 30년째인 유통 분야 전문가다. 그는 백화점·할인마트·편의점·슈퍼마켓·TV 홈쇼핑·인터넷 쇼핑몰 등 유통의 거의 모든 분야를 누벼온 인물이다. 그는 최근 <장사의 99%는 트렌드다>라는 책을 썼다. 김 대표를 만나 앞으로 변화될 유통 시장의 트렌드를 들어봤다.

- 김영호 대표는 “동네 슈퍼마켓은 싱글족, 여성, 노인 고객에 철저하게 초점을 맞춰 사업을 재편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상은 수시로 상전벽해(桑田碧海)를 겪고 있다. 그 세상에서 새로운 업태(業態)는 계속 발전하고 진화한다. 소비자들의 심리를 발 빠르게 파악하고 마케팅 전략을 세워야 하는 유통업계에서는 세상의 변화속도보다 더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유통업계에서 잔뼈가 굵어온 김영호 대표는 특히 창업을 준비하고 있는 젊은 경영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2015년부터 여성 인구가 남성보다 많은 여초(女超)시대가 열리게 됩니다. 이미 고령사회로 진입하고 있고, 생산 가능인구도 2016년 정점을 찍고 감소세로 돌아설 예정이구요. 앞으로 1~2년 내에 엄청난 변화가 시장에서 진행될 겁니다. 출산율이 세계 최하위권이고 빠른 고령화가 이어지는 우리나라 시장은 중대한 변화의 중심에 서게 될 겁니다. 시장 상황은 예전보다 고정 고객을 확보하는 일이 힘들어졌습니다. 기존 업태와 새로운 업태 간의 경쟁은 점점 더 치열해질 수밖에 없죠. 이러한 유통 전쟁에서의 승리는 트렌드를 가장 먼저 포착하고 가장 잘 해석한 이에게 돌아가게 됩니다.” 김 대표가 운영하고 있는 유통 트렌드 전문 컨설팅 기관인 ‘김앤커머스’에서는 2015년 대한민국 유통 트렌드를 ‘BRAVO SLOW LIFE’로 내다봤다. B(Bright customer·똑똑해지는 소비자), R(Rare effort commerce·별 노력 없이도 가능한 커머스 발달), A(Active mobile payment·왕성한 모바일 결제), V(Value concentrated sharing retail·가치에 집중된 공유 리테일), O(Omni-channel·점점 활발해지는 옴니채널), SLOW LIFE(슬로라이프 즐기는 소비자층 증가)를 말한다. 김 대표는 “올해는 불황과 경쟁에 지친 도시 소비자들을 중심으로 슬로 라이프를 즐기기 위한 소비가 주도하는 한 해가 될 것이다. 소비자들은 새로운 디지털 기술을 최대한 이용한 똑똑한 소비 주체가 되면서,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 없이 자유롭게 넘나들 것이다.  앞으로 소비자들은 주머니에 현금도 카드도 없이 단지 스마트폰 하나만 가지고 다니면서 쇼핑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똑똑해진 소비자를 끌어들이기 위해선 급변하는 마켓 트렌드를 제대로 이해하고 활용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김 대표의 책에는 창업을 준비하는 이들은 물론 대기업과 대형 유통업체와의 싸움에서 사생결단해야 하는 골목상권의 소상공인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깨알 같은 정보들이 담겨 있다.  동네 슈퍼마켓 철저히 차별화해야 대형 유통업체가 동네 상권까지 장악하고 있어 동네 슈퍼마켓들은 점점 살길이 막막하다. 정부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으로 골목 상권을 보호하겠다고 하지만 자본력으로 무장한 대기업과 맞서기란 쉽지 않다. 김 대표는 “일본은 우리보다 유통 부문이 많이 발전했다. 인구 통계적 변화도 우리보다 먼저 왔고, 대기업의 골목 상권 침략도 먼저 겪었다. 백화점, 대형마트, 편의점 등 우리나라의 모든 유통 업태는 미국에서 발생해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로 진입한 경우가 많다. 최근 일본에서는 1990년대 상권을 재편했던 편의점, 대형 할인점의 기세가 꺾이고 동네 상점이 되살아날 조짐이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고령화, 저출산 현상이 깊어지면서 가까운 상점에서 소량의 장을 보는 여성과 노인 등 작은 가구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동네 슈퍼마켓은 싱글족, 여성, 노인 고객에 철저하게 초점을 맞춰 사업을 재편해야 합니다. 당연히 작은 단위의 생필품 위주로 판매하고 단골 고객에게는 무조건 배송 서비스를 해야 합니다. 여성과 고령자는 장 볼 때 물건을 잔뜩 사서 들고 가기 어렵습니다. 또 커피 전문점처럼 쿠폰과 스티커 제도를 활용해야 합니다. 이런 단순한 일만으로도 일본 상권이 달라지고 있고 우리나라 역시 이 흐름을 따라가게 될 겁니다.” 최근 유럽의 동네 슈퍼마켓이나 편의점은 점차 무인 판매대를 늘려가고 있다. 기술이 결합되면서 가능해진 일이다. 고객들은 매장에서 계산을 위해 대기하는 시간을 가능한 한 단축하고 싶어 한다. 김 대표는 “최근엔 매장 내의 모든 계산대를 셀프로 만든 업체도 늘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글로벌 불황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된 이후 유럽 각국의 유통업체에서 무인판매 방식이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유통업체 입장에서는 인건비를 절감해서 좋고 소비자는 계산대 앞에서 장시간 기다리지 않아 서로 좋은 시스템이죠. 무인 판매대와 함께 휴대전화를 이용한 지불 시스템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습니다. 무인 판매 방식의 대표주자라 할 수 있는 벨기에의 슈퍼마켓 체인 델하이즈는 세계 최초로 모바일 셀프 스캐닝 서비스를 도입했습니다. 고객이 매장 내에서 휴대폰처럼 생긴 바코드 리더기를 들고 다니며 상품의 값을 직접 계산하고 지불하는 방식입니다. 이 기기를 이용하면 별도 계산대를 이용할 필요가 없어 쇼핑 시간이 크게 줄어듭니다.”   - <장사의 99%는 트렌드다>에는 골목상권의 소상공인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깨알 같은 정보들이 담겨 있다. 김 대표는 지난 20여년 간 전 세계 곳곳을 돌면서 장사와 유통, 사람들의 소비 패턴을 분석한 내용을 담은 <세계의 도시에서 장사를 배우다>도 펴냈다. 사진: 오장환 유럽 무인판매방식 빠르게 확산 김 대표는 우리가 벤치마킹해야 할 다양한 해외의 슈퍼마켓 사례를 들려줬다. 그 중 하나는 시니어 세대를 겨냥해 맞춤 서비스를 제공하는 독일의 슈퍼마켓 체인인 에데카(Edeka)다. 이곳은 50대 이상 은퇴자를 타깃으로 해 2008년부터 매장을 고령자 전문 유통점으로 바꾸고 있다. 50대 이상의 소비자를 위해 무엇보다 이용의 편의성에 최대한 중점을 두고 있다. “선반의 높이는 다른 매장보다 20cm 정도 낮게 했고, 계산대도 일반 매장보다 낮게 설치했습니다. 쇼핑 카트도 휠체어와 연결해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카트에 돋보기를 부착해서 작은 글씨로 쓰인 제품 설명서도 읽기 쉽도록 하구요. 바닥도 눈이 부시거나 미끄럽지 않도록 신경을 쓰고 휠체어나 보행 보조기로 이동하기 쉽도록 통로도 넓게 만들어져 있죠. 판매 직원은 고객층과 나이가 비슷한 50세 이상으로 채용하는 전략도 썼습니다. 또 주변 은퇴자 아파트와 보호시설에 무료 셔틀버스를 운영하는 등 세심한 배려를 하고 있죠. 미국보다는 유럽의 유통을 자세히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유럽 나라들의 국토 면적과 우리나라의 면적이 비슷한데다 협동조합과 동네 슈퍼마켓이 발달한 이유도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유럽에서는 실리를 우선하는 소비자가 많습니다. 우리가 앞으로 진행해야 하는 소비의 형태가 현재 유럽에서 진행 중이죠.” 유통 트렌드 중 주목해야 할 것 중 하나는 바로 여성의 구매파워가 급상승했다는 대목이다. 김 대표는 “전 세계 여성 경제의 부상은 기업들이 그간 해왔던 연구와 제품개발 및 판매 방식에 일대 혁신을 필요로 하게 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중국의 20대 여성층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요즘 중국 20대 여성들의 소비 행태에 큰 특징이 있는데, 금융위기와는 상관없이 왕성한 소비 의욕을 보인다는 점입니다. 월광족(月光族)이라 불리는 이들은 저축보다는 패션이나 미용 등 자신을 꾸미는 일에 돈 쓰는 것을 아끼지 않습니다. ‘월’은 월급을, ‘광’은 모두 다 사용해 버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G2대국 중 하나인 중국의 차세대 소비주체인 20대 여성에게서 나타나는 소비행태를 주목해야 합니다.”   - 30년간 유통 분야에서 일해온 김 대표는 “사물 인터넷이 발달할수록 유통 시장은 상상 이상으로 변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슬로 라이프 가치 커질 것 또 한 가지는 ‘슬로 라이프’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이 빠르게 변할수록 느림에 대한 가치는 더 빛을 발하게 된다는 것. 김 대표는 ‘잠깐 멈추면 보이기 시작하는 주변을 놓치지 않고 사는 삶’을 ‘슬로 라이프’라고 정의했다. 슬로푸드 운동은 이미 1980년대 중반부터 시작됐고, 최근 들어 얼리 어답터와 대비되는 슬로 어답터나 SPA 같은 패스트 패션과 반대되는 슬로 패션 등이 주목을 받고 있기도 하다. 김 대표의 설명이다.  “걷기 운동이 유행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지방 도시들은 걷기를 통해 자연을 느끼고 싶어 하는 도시인들을 위해 슬로 시티를 표방하고 나서고 있습니다. 슬로 시티라는 개념은 1999년 이탈리아의 작은 산골 마을에서 시작됐습니다. 그 지역 고유의 자연환경과 음식, 문화를 지키면서 지속 가능한 발전을 추구하는 것을 말하죠. 쉽고 편한 것을 좇는 현대 문명을 거슬러 느림을 추구하는 슬로 시티는 지역 도시들의 경쟁력을 키워줄 겁니다. TV에서도 ‘슬로(SLOW)’의 개념을 적용할 수 있습니다. 한 예로 2009년 노르웨이의 한 방송사에서는 베르겐이라는 해안도시에서 수도인 오슬로로 가는 기차 맨 앞에 카메라를 설치했습니다. 기차가 달리는 7시간 동안 카메라가 찍은 장면을 ‘베르겐 기차여행(Bergen Line)’이라는 제목으로 방영했어요. 기차를 타고 가는 동안 볼 수 있는 그대로를 촬영한 영상을 편집하지 않고 그대로 보여줍니다. 중간 중간 기차가 지나가는 터널 속 어둠까지 그대로 보여줬죠. 무료할 수도 있는 그 프로그램은 평균 시청률의 4배 정도인 15%의 시청률을 기록했습니다. 여기엔 선정적인 장면도 잔인한 폭력도, 또 막장 스토리도 없습니다. 바로 그 점이 시청자들을 끌어들인 겁니다. 그런가 하면 영국항공은 2014년 6월부터 기내 TV 프로그램에 ‘슬로 TV’를 추가했습니다. 차분하고 따분하지만 자극적이지 않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프로그램을 찾는 고객들이 늘고 있기 때문입니다.” 김 대표는 “가까이 다가온 ‘사물 인터넷’ 시대에 맞춘 마케팅 전략도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영국 런던의 중심 쇼핑가인 리젠트 스트리트에 있는 아이나모(Inamo) 레스토랑에는 웨이터가 없다. 대신 터치스크린으로 만든 테이블이 주문을 받는다. 고객이 자리에 앉으면 테이블은 메뉴판으로 바뀌고, 주문부터 계산까지 고객은 터치스크린만 누르면 된다. 얼마 후의 미래에는 매장을 지나가면서 마음에 드는 구두를 발견하면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고 이것을 모바일 웹 구매 예정 목록에 저장하면 미리 지정된 주소로 배송될 것이다. 미래의 소비자 모습이다.  “사물 인터넷이 발달할수록 유통 시장은 상상 이상으로 변하게 될 것입니다. 수많은 제품을 오프라인 매장이나 온라인 쇼핑몰에 진열하는 방식은 앞으로 시대 흐름과는 맞지 않는 거죠. 한 번의 클릭이나 터치로 쇼핑이 끝나는 ‘제로 에포트 커머스(Zero effort commerce)’ 시대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을 즉시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서비스가 인기를 끌게 될 겁니다.”  ▒ 김영호 대표는… 1960년생. 83년 동국대 무역학과 졸, 90년 서강대 경영대학원 MBA 졸, 84~86년 삼성그룹 24기·신세계 백화점, 93~94년 나산패션마트, 94~97년 경방필백화점, 2006~09년 서울디지털대학교 경영학부 겸임교수, 2008년~현재 중기청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경영자문위원, 2012년~현재 성남시 상권활성화재단 경영자문위원, 98년~현재 김앤커머스 대표.

기사: 조성아 기자 (jsa@chosun.com)

사진: 한준호

해당기사전문 http://economyplus.chosun.com/special/special_view_past.php?boardName=C03&t_num=8239&img_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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